11살 아들은 설거지 중이다. 금색 테두리를 두른 네모난 딱지를 사기 위해서다. 그렇게 손수 번 500원으로 딱지를 사는 것이다.
"숟가락 젓가락 닦는 게 제일 싫어요."
"세상에 숟가락 젓가락을 닦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아들은 그 말이 재밌는지 소리 내 웃는다. 나를 보며 큰 소리로 웃는 아들의 모습이 간만에 진심으로 귀여워 보인다.
아들과의 갈등, 그 중심에는 '공부'가 있다
내 인생을 둘로 나눈다면 아기를 낳기 전과 후가 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뒤론 세상의 모든 여자들도 둘로 나뉜다. 아이가 있는 여자와 없는 여자. 그것은 기혼과 미혼을 나누는 것보다 백만 스물일곱 배는 다른 기준이다.
엄마가 됐다. 그것도 11년 전에. 뭘 몰랐을 때는 다 그렇게 엄마가 되는 거라 생각했다. 맞다. 누구나 엄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엄마'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커갈수록 나 역시 나이가 들어가지만 더 큰 어른이 되는 것은 갈수록 더 어렵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분명 엄마 잘못 만난 거다. 나도 안다.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니란 것을. 밥 먹으란 잔소리, 숙제하란 잔소리, 게임 오래하지 말란 잔소리. 아들은 매일 밤 잔소리를 듣다 지쳐 잠드는지도 모른다.
갈등의 중심에는 공부가 있다. 공부하라니까 오래 놀지도 못하고, 그러니 짜증나서 밥도 먹기 싫고 다 그런 거다. 우리 어릴 땐 그랬다. 방과 후 책가방 던져 놓고 놀다 저녁 먹을 때나 돌아왔다. 모르는 게 아니다. 태초부터 젤 만만한 존재가 엄마인 걸아는 아들은 그걸 못해 날 싫어한다.
그런데도 난 아들을 놀게만 두지 못한다. 공부 못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없고 그러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를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아이의 미래며 곧 나의 미래일 수 있다. 자신의 일에 상관하지 말라지만 자식의 인생을 걱정하는 것이 부모의 인생이라는 것을 아들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좋은 직장 뿌리치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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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진로학교> 표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이루어진 강연을 책으로 엮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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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직업학교>라는 책을 읽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10년 11월 4일부터 12월 23일까지 진행한 강좌를 묶은 이 책에는 7명의 멘토가 제안하는 수많은 직업이 등장한다.
그들은 1%의 나눔운동을 통해 참여연대와 기부문화를 정착시킨 사람, 환경에 관심을 갖다 낙후된 농촌 마을을 살리는 공동체를 만든 사람, 학생들을 사이버 외교관으로 만들어 세계에 대한민국을 바로 알리는 단체인 '반크'를 설립한 사람 등이다.
방송국에서 일하거나 전직 변호사, 교사등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직업을 때려치운 사람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은 과정을 설명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술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상위 4% 안에 들어야 가능한 얘기다. 그들은 이미 똑똑했다.
학생들이 열공하는 이유는 결국 똑똑해지기 위해서다. 그건 결국 좋은 대학과 직업을 갖기 위해서 건만. 그들의 말은 폼 나는 직업을 가져도 자신과 맞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어쩌란 말인가. 내 안에 있는 3%의 가치를 발견하고 키워, 깊이 연구하라고 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고 한다. 다 옳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서 쉽지 않은 얘기다.
고졸이어도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의 안전망이 필요
내 안에 있는 3%의 가치를 발견하고 키우기 위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공부해야 하지만 정작 아이들에겐 그럴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갈수록 어려워지기만 하는 공교육을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으며 내 가치를 발견하기란 어렵다는 거다.
정부 고위직이나 연예인들의 자식들은 앞 다투어 유학을 보낸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렇지 못한 부모는 만만찮은 사교육비를 대며 근근이 뒷바라지를 해주지만 아이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어 답답하다.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고등학교를 자퇴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곤 한다. 입시위주의 교육만을 받으며 꿈을 이루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아는 거다.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쉽지 않은 결단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능력과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또 어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대안학교를 보내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문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대표 송인수씨는 '잘못된 진로교육의 문제는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들의 낡은 의식이 문제'라는 말을 한다. 맞는 말일지 모른다. 대학만을 목표로 쳇바퀴 도는 일상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 그런 환경을 원망하지만 그렇다고 탈출구를 쉽게 찾아주지 못하는 부모 마음은 답답할 따름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아니, 상업계나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전공분야에서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확보된다면 부모들은 공부만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만을 졸업하고도 성공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서태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엄마에게도 꿈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부모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라크에서 시작된 평화여행을 통해 자신을 찾게 되는 임연신씨는 논이 너무 아름다워 농업을 공부하며 논을 찍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진짜 꿈은 네가 몇 살 때 찾을지 몰라. 그 꿈을 찾는 과정도 인생이니까 그 과정도 네 꿈이 일부라고 생각하고 즐겨봐."
255페이지의 글들 가운데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구절이다. 아이가 선 바로 이곳에서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을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내 자식은 더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람 때문이다. 자식을 향한 마음을 비우는 그것 또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난 아직 멀었다.
마술사가 꿈인 우리 아들은 수많은 다른 꿈들로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다. 아니,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이 원하는 꿈을 찾지 못해 방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럴 때마다 조용한 기다리는 것뿐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응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서 세상을 향해 눈을 돌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런 자식을 진심으로 지지해주고 기다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부모 또한 자신의 꿈을 꾸준히 키워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아이들의 진로 설계에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 이 강연회에 참석한 부모들 가운데, 자신이 오래 전 내려놓았던 가치에 눈을 떠 새로운 길을 가고자 마음먹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먹는 것을 좋아해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딸은 가끔, 엄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 나 또한 꿈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 그런 엄마를 보고 아이들 또한 꿈을 키울 수 있기 바란다. 자식의 꿈을 그들의 인생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꿈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경험하는 많은 것들 또한 인생의 한 부분임을 알아갈 테니 말이다.
소통의 시작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 첫 걸음
책 속에 나온 7인의 공통점은 각자의 재능을 통해서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오직 자기의 이익을 위해 직업을 선택하기보다 우선 자기 자신의 적성과 기질을 활용하라고 한다. 또한 자기 내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임영신씨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게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귀한 존재로 인정'받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돌아보고 긍정적 자아감을 회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식을 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돼야 할 것이다.
방과 후 수업으로 배운 마술을 한 가지씩 선보이는 아들의 눈에 빛이 난다. 그런 아들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것이 아이의 꿈을 위한 첫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