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신문스크랩!!

나이롱 맏며느리 노릇

무화말 2014. 9. 4. 18:27

나이롱 맏며느리 노릇 [355]

제겐 고향이란게 없지요..

아,엄밀히 따지자면 서울 장충동이 고향입니다요..

 

지금 족발집의 원조 운운하면서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그 곳..

그곳이 제 출생지네요..

그래서 이런 전,,

막연하나마,결혼 전,,명절을 앞두고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서울역의 장면들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번쯤은 그 대열에도 끼어보고 싶었지요..

그런 소박한 꿈?

이루어졌다고 봐야겠지만..

그 꿈이 실현되고 막상 그 대열에 서니 여간 성가신게 아니더군요.

막히는 차량 속에서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고 어르며 가기엔,

제 품성이 넉넉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곳은 제 고향이 아니더라구요 ㅎㅎ

힘들게 도착해 보았자 제게 기다리는 것은 맏며느리라는 책무가 가져다주는 대소사들뿐..

3형제의 맏아들인 나무꾼은 부모님에게 더없는 효자이고,

아래로 있는 두명의 시동생 또한 딸같은 효자들이지요..

효자 밑에 효부없다 했나요?

그래서 결혼 초...철없는 서울가시내는  그랬어요..

그렇게 엄마가 좋으면 엄마랑 살지.왜 나랑 결혼했냐구??

중학교 시절부터 공부라는 이유로 고향을 벗어난 나무꾼에게 어머니의 존재,

고향의 의미를 헤아리기엔

그땐 턱없이 제 지혜가 모자랐지요.

 

이 나무꾼,,고향 가는 날은 절로 콧노래를 부릅니다.

그럼,,제가 또 한마디 합니다.

둑방길 걸으며 꽃반지 주고 맹세했던 처자라도 물레방앗간에서 만나냐고?

바가지 긁을라치면,,

그 처자가 아직도 자기 땜에 시집 안갔다고..능청떱니다..

그러면 전,오늘 밤 달도 휘엉청 밝은데 만나고 오라고  등밀어 내보냅니다.

순희가 됐든,영자가 됐든,말숙이가 됐든...첫정을 못 잊는게 남정네라면서요~

속도 좋다구요?

아니 속 좋은게 아니라,,맘을 붙잡는다고 내것이 되나요?

그러니 그런 사소한(?) 일엔 독립투사처럼 용감해지는거죠.

 

올한해는 쉬고 싶은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여름이라 모두들 휴가를 외쳐대는 속에서,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본지가 언제인지..

그래서 모두들 놀 수 있다는 공식적인 이 명절이 제겐 휴가라고 여기고

남몰래 야심찬 거사도 계획했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사람 노릇-며느리 노릇-을 못하고 살더라구요..

바쁜 며느리,일에는 욕심 많은 며느리,,,

그 며느리를 늘 배려하시면서 집안일에서 빼주시는 시부모님,,

어찌 죄송한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이 참 간사하대요?

처음엔 한없이 송구스럽다가,,어느새 그게 당연시 되면서..

다소 뻔뻔함까지 보이는 며느리가 되가고 있지 뭡니까?

 

이건 아닌데,,사람 사는 게 미루어야 할 일이 있고,미루면 후회할 일이 있는 법이거늘...

그래서 내 머리를 내가 쥐어박으면서,,,

오늘 아침,,아버님께 전화 올렸지요.

25년 전 시집가던 그 해,

남자만 있던 집에 며느리 들어오니 그저 귀엽고 예쁘기만해서,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이말씀저말씀 들려주시던 아버님,

그 며느리가 보고 싶어 서울은 와야겠지만,며느리 불편할까봐 핑계거리 삼으시느라고,

 김치 잔뜩 담아 들고 오시던 분..

이젠 그 분의 등이 새우처럼 굽으시고,간간히 눈빛도 풀리는 걸 뵐 때면,,마음이 짠해집니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저 옆에 세워두시고,

'아이구,우리 며느리 똑똑해유,,장가는 잘갔시유.그 넘이..'하시면서,

장날에 신발사주시던 분..

무지무지 촌스런 그 색을 전 예쁘다고 그 동리에선 열심히 신었습니다만^^

 

낙화암에 달뜨고 고란사에 종소리가 울리면 아버님과 동동주 기울일겁니다.

그냥 며느리가 주섬주섬 삼키는 말에 눈도 안보이게 웃으시는,

아버님께 술한잔 올리고 넉넉하게 용돈드리고 오렵니다.

그리고 그걸 밑천으로 당분간 바빠서 못찾아뵙는것에 대한,

면죄부로 삼을 야심찬 계획을 또 갖고 있습니다요.
아래로 있는 울예쁜 두동서들.

형님이란 말보다 급하면 언니라고 부르는 두동서들에게,

추석선물로 여름내 날밤새며 번 돈을 뭉텅이로 툭 쓰고..ㅎㅎ

그렇게 한가위 준비가 시작되었지요.

 

나무꾼은 또 천안쯤 가면 콧노래 부를겁니다.

객지에서 고생하며 공부하던 나무꾼의 이야기를,

70년대 중동건설신화처럼 전 또 들을것이고,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은 눈물없이 못들어준다며 맞장구칠것이고,

부모님은 어디쯤 오고 있냐면서 계속 전화하실것이고,,

도착하면 저는  앞치마 두르고 총총걸음으로 식사준비하겠지요.
솜씨 좋은 둘째 동서는 밑반찬 만들고,

아침잠이 넘쳐서 죽어도 못일어나는 막내 동서는 청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니까,

실컷 자고 일어나면 온 집안을 반짝반짝 치울테고,,

저는 열심히 전과 찌개를 만들겁니다^^

그리고 아버님과 낙화암 한바퀴 돌면서 부를 노래도 연습좀 하구요^^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시간을 다투는 일 한가지를 겨우 마무리 지어놓고 한가위 인사드립니다.

더도덜도 말고 한가위 휘엉창 달빛같이만~~

건강들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