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저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나무집
http://v.media.daum.net/v/20160715112443607

박공 모양 지붕에 단정하게 나무로 마감한 매무새, 어느 면에서 보아도 완벽하게 균형감을
갖춘 비례감. 예천의 아늑한 숲 속, 깊은 처마만큼이나 속내 깊은 나무집에 다녀왔다.

고향 같은 집을 짓다
서울에서 남쪽으로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경북 예천. 아늑한 숲이 펼쳐지는 산자락 앞에서
목적지 도착을 알린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하게
생긴 숲 속의 나무집을 만나러 가는 길은 기분 좋은 여행 같았다. 이 집의 건축주는 도시 생활을
하다 퇴직 후 고향인 경북 예천으로 내려갔다. 일가친척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넉넉한
공간을 원했던 그는 최고의 파트너가 될 건축가를 찾아 집을 맡기며 고향처럼 소박하고 다정한
집을 지어달라 요청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오랜 실무 후 막 한국 땅에 발을 디딘 이승택, 임미정
건축가 부부는 이렇게 예천 집을 의뢰받았다. 오랫동안 ‘집’ 하면 연상되는 박공지붕 모양을 모티프
삼아 그리기 시작한 집은 설계와 시공으로 1년여를 보내고 건물 안과 밖을 모두 나무로 마무리한
단아한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찐 나무로 만든 엄마 품 같은 공간
집은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모양이다. 나지막한 산등선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것이 풍경과도
그림처럼 잘 어울린다. 집의 머리에는 커다란 박공지붕이 얹혀 있고, 남쪽으로는 큰 창을,
동서로는 길쭉하게 사각형을 만든 집. 집 전체는 나무로 되었는데, 뼈대만 나무집이 아니라
외부 역시 모두 나무로 마감했다. 유난히 정갈하고 담백해 보이는 외관의 집은, 자세히
들여다보니 흔히 볼 수 있는 가스관이나 전선, 빗물을 모아 바닥으로 내려 보내는 홈통
등이 보이지 않는다. 외장을 하나로 통일하면서 설비는 모두 안으로 감춘 결과다. 군더더기는
숨기고, 간결한 디자인을 고민한 흔적은 이밖에도 집 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집의 또 다른 큰 특징 중 하나는 독특한 외장재의 사용이다. 나무를 고온으로 쪄서 건조해
만든 탄화목을 사용했는데, 이는 수분 함량이 적어 뒤틀림이나 온도 변화에 강한 열처리 목재다.
나무의 특성 때문에 담백하면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시각적 효과도 크다. 박공으로 처리한
지붕까지 모두 탄화목으로 마감했다. 탄화목은 태양빛을 늘 받는 지붕에 사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마감재 중 하나다.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나무의 컬러 변화가 다채롭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햇볕을 받아 바래지면서 자연스러운 미를 더한다. 지붕의 모양은 단지 멋만 낸
것이 아니라 집의 기능과 관련이 있다. 삼각형 지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쪽과 서쪽의 모양이
다르다. 동쪽의 일부를 앞으로 쭉 내민 모습인데, 이 때문에 남쪽으로는 처마가, 북쪽에는 야외
테라스가 자연스레 생겼다. 여름철에는 직사광선을 막아주고 겨울에는 햇볕을 집 안 깊숙이
들이고자 함이다. 늘 보던 지붕이지만 약간의 비틂으로 색다른 분위기가 풍긴다.
1 간결한 품새의 나무집이 풍경과 하나 되어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지붕의 일부를 앞으로
내밀어 처마를 깊게 만든 외관이 인상적이다. 내민 처마가 시간에 따라 다른 모양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stpmj의 이승택 소장이 툇마루에 앉아 있다.
2 동서로 길게 배치된 다이닝 공간과 거실. 경사 지붕면이 더욱 돋보이도록 깊이감을 더한
디자인이다.
3 2층 다락 공간은 작은 서재로 단장했다. 높은 지붕 선과 가파른 경사 덕분에 불편함 없이
오갈 수 있는 공간으로, 벽면 일부에는 책장을 짜 넣었다. 계단실 초입에 야외 발코니로 나가는
문이 나 있다. 문을 열어두면 시원한 공기가 실내를 순환한다.
4 작은 부분이지만 욕실 하부장의 디자인까지 신경 썼다. 겉과 속이 같은 집을 만들고자 한
건축가의 의지가 엿보인다.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을 수상하다
실내는 간결한 구성이다. 은퇴 후 한적한 생활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집이기에 많은 부
실은 필요치 않았다. 1층은 2개의 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트인 구성이다. 건축주가
특별히 문중 어르신들을 모시고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원했기에 건축가는
거실과 주방을 길게 배치해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해도 비좁지 않은 동선을 확보했다.
동선을 길게 빼면서 주방은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뒤쪽에 배치해 거실에서 보이지 않는다.
살림이 뒤에 숨는 구성이 마치 옛 한옥 고택을 닮았다. 2층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재가
한적하게 자리한다. 공간은 텅 빈 듯 간결한 모습인데, 수납을 모두 벽으로 감추고 하얀
페인트로 마감해 조형미를 극대화했다.
집을 짓는 내내 현장에 머물렀던 건축가는 작업자들과의 소통을 집 짓는 에피소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으로 꼽는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실무를 해온 탓에 일본어가 섞인 한국의
현장 용어를 못 알아들어 공사 초기엔 못 하나 박을 때도 우왕좌왕했고, 서로가 쓰는
단어를 오해해 현장에서 다투고 화해하는 일이 반복되는 드라마틱한 경험도 겪었다.
젊은 건축가 부부가 애정과 열정을 쏟아 만든 이 집은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2016’을
수상하며 실력 있는 젊은 건축 듀오의 한국 활동 시작을 알리는 단단한 첫걸음이 되었다.
건축주는 이렇게 완성된 집을 ‘셰어하우스(share house)’라고 이름 붙였다. 노후를 위해
준비한 집이지만 자녀들과 손주, 문중의 친인척들이 언제든 와서 쓸 수 있도록 대문을
활짝 열어둔 것이다. 넉넉한 마음과 속 깊은 인정이 따뜻한 나무와도 닮았다. 무엇이든
품는 깊고 포근한 이 집에서 가족은 또 하나의 고향 풍경을 만들어간다.

1 현관으로 들어오면 높은 천장고와 측면의 정사각형 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창으로
뒷산 풍경이 그림같이 담긴다.
2 안쪽에 자리한 주방 공간. 창 너머로 초록이 싱그럽다. 지붕 선과 계단의 사선이 만드는
선의 향연으로 공간을 누리는 즐거움이 크다.
3 지붕을 비켜나게 만든 덕분에 북쪽에는 자연스레 야외 테라스가 생겨났다. 그 일부를
활용해 작은 툇마루로 만들고, 은은하게 볕이 들어오도록 창을 냈다. 집은 혹시 모를
하자에 대비해 방수는 삼중으로 처리하고, 벽과 외장재 사이 10cm 정도에 수분이 증발할
수 있는 공기층을 만들어 외벽 전체에 둘렀다. 이는 나무가 썩거나 뒤틀리는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는 장치로, 이 공기층은 또 하나의 단열재 역할을 한다. 여름에는 뜨겁게
데워진 공기가 실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겨울에는 외부의 찬 기운을 한 번 걸러주기도
한다. 일종의 더블스킨(Double skin)이다.
4 예천의 아늑한 숲 속에 자리한 그림 같은 집. 자연과 하나 된 모습이 편안하고 정겹다.
기획 : 정사은 기자 | 사진 : 김덕창 | 취재협조 : stpmj 이승택, 임미정 건축가(02-497-1397, www.stpmj.com)